HOME







한 나라의 출판역량은 출판도시나 베스트셀러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출판의 힘은 바로
전문출판에 있으며, 전문출판 분야의 질량이 그 나라의 출판문화 성숙도를 재는 바로미터이다.

사진 전문출판은 사진가와 사진이론가(사진비평가, 사진사학자 등)를 출판 근원(source)으로 한다.
어떠한 전문출판 분야도 그 분야의 학술적 성과 없이 출판이 불가능하며, 전문출판은 그 영역의 지적 수준과 성취를 곧바로 반영하게 되어 있다. 그만큼 출판은 힘이 세보이면서도 약한 존재이다.
오늘의 한국 사진출판도 바로 한국사진계의 축소판이며 척도이다. 사진기술서와 누드사진이
흥청거리면 우리의 사진계가 그러한 영역에서 머물러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반드시 그것을 주도하거나 뒷받침하는 사진가가 있고, 사진비평가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사진의 상업적 매력에 흠뻑 빠져든 일부 출판업자나 기획사 매니저들도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모여배우만 곤욕을 치르고 끝난 종군위안부 사진 사건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진계의 상업주의와 빈곤한
역사의식이 합작해 만들어낸 사진계의 초라한 초상일 뿐이다.

때는 바야흐로 디지털 영상시대이다. 사진은 사진사 150주년을 정점으로 디지털 영상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때 우리는 1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오히려 사진계의 분열상을 나타냈고, 내일이면 다가올 사진의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저 먹이만 찾아 헤맬 뿐이었다.
디지털 사진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날이 밝듯이 훌쩍 우리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디지털 사진관련 책들은 모두 컴퓨터 전문가들과 웹 디자이너들이 저자인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사진 출판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아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가 기술서인데,
그 상대적으로 큰 사진출판시장을 다른 분야의 출판업자에게 고스란히 내주고 말았다. 출판하기만
하면 2-3만 부씩 나가는 디지털 사진관련 매뉴얼들이 모두 컴퓨터 전문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하다못해 일반 사진기술서까지도 아마추어 사진가가 석권하고 있는 것도 예사로운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진계는 시대의 흐름에 둔감했고, 독자의 요구를 무시해 왔으며, 사진문화를 출판을 통해 보편화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영상시대의 화려한 주역이 되지 못하고 그저 한낱 거대한 소비집단으로 전락해 버린 형국인 것이다. 요즘 활동하는 사진가치고 디지털 프린트 안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부터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공부하던 사진학도들이 영예의 학위를 받아들고 속속 귀국하고
있다. 반미를 부르짖으면서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거나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듯이 사진계도 이젠 외국 학위 없이는 명함도 새길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인쇄물로만 보던 으젠느 앗제, 만 레이, 브레송 사진도 이젠 국내에서 차 마시며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몇몇 사진가들의 사진이 외국 화랑에서 잘 팔렸다는 소문만으로도 급속하게 인기작가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사진계는 타분야에 앞서 이미 세계화의 길로 들어선 듯이 보인다.

그러나 사진이, 그들이 애써 공부하고 돌아온 서구에서 발달해 온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어느덧 우리 민초들의 가슴속 깊이 들어와 있었다. 가서 배운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사진을 체화(體化)
했다는 말이다. 비록 앨범이나 액자가 가족사에 한정되는 것일지라도 일반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진을 이해하고 우리 정서 속에 녹여 받아들였다.
그 사실을 나는 얼마 전 모 단체가 주관한 사진기록문화상 기록사진 부문에 출품한 일반인들의
사진 앨범을 통해 역력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권의 사진 앨범으로 소화해 낸 것을 보고 예술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이러한 것이 바로 예술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앨범의 사진들은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적어도 사진을 위한 사진은 아니었다.
오늘의 사진가와 사진비평가들은 과연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사진 앨범을 어떠한 서구 담론으로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롤랑 바르트나 발터 벤야민이 설명해 주리라 기대하는가.
그들이 우리 아버지 세대만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정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가.
그 한숨과 눈물, 사랑과 희망까지.

우리 사진계가 언제까지 한국사진을 폄하하거나 우리의 역사와 정서를 외면할 것인지 묻고 싶다.
혹시 우리의 정서가 서구의 맥락에 닿아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 화려한 빅토리아 왕조에…….
제발 사진과 글이 우리 현실과 정서로 되돌아오길 바란다. 이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사진출판이
성장하고 꽃피우기 위해선 그 길밖에 없어 보인다. 독자는 우리처럼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다.

(이 칼럼은 '월간 포토넷' 2004년 10월호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4-10-14| 이규상 | 눈빛출판사 대표

목록보기



위로올라가기

관리자에게 메일보내기 사이트맵
도서구입방법
 
교보문고
 
알라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