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며칠 전 문광부 2004년 추천도서 목록이 발표되었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지난 일 년 동안 출간한 책 몇 종을 엄선해 출품했었는데 그 목록에 한 권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은근히 기대한 바 없지 않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추천도서로 선정되면 책 몇 권 사주니까 출판사 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바람에서였지요. 그런데 올해에도 보기 좋게 물을 먹었습니다.

문광부 추천도서와 저희 출판사가 발행한 책들과는 아예 인연이 없는 듯합니다. 10여 년 동안 책을
내오면서 단 한 권도 그 추천도서 목록에 오른 적이 없으니까요. 정권이 네 번이나 바뀌면서도 계속
물을 먹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신기록인데, 저는 요즘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저희 출판사에서 내는 책의 내용이 형편없을 수도 있고, 책을 잘못 만들어서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두번째는 저희가 주력하고 있는 사진분야가 우리나라의 학문과 예술 분야의 발전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겠지요. 심사위원들의 눈에는 사진
분야에서 책이 나오는 것 자체가 괘씸해 보일 수도 있었겠지요. 세번째는 이젠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
하고 싶은데, 문광부 직원과 출판사간의 물밑거래를 전혀 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겠지요. 소위 로비
라고 하는데 그 동안의 추천도서 목록을 보면 몇 개의 출판사에 혐의를 두지 않을 수 없군요. 특히 제목자에 ‘한국~’하면 무조건 추천도서에 선정돼 온 사실을 간파한 일부 출판업자들이 아예 기획단계에서부터 추천도서를 조준해 책을 만들어 온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요. 증거가 필요하다면 문광부
추천도서목록이 훌륭한 증거가 되겠지요.

저는 이 자리에서 문광부 추천도서 심사의 공정성을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출판사들의 불공정 경합과 야합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반성하고 싶은 것은 왜 이제 와서
문광부 추천도서에 그렇게 연연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저도 이제 어쩔 수 없이 체제에
순응하고 편한 길로 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천도서 목록에 등재되지
못해서 마음이 상했다기보다는 타협하려 하고, 위를 보고 뭔가를 바라온 제 자신이 못내 부끄러운 것이지요. 혹시 추천도서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발행한 책들을 괄시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나
않았는지 책들에게 미안하고, 저자분들께 죄송할 따름이지요.

요 며칠 ‘아웃사이더’와 ‘언더그라운드’라는 화두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아웃사이더’는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을 일컬어 말하고, ‘언더그라운드’는 상업성을 무시한 전위적 실험적인 예술이나 풍조를 뜻합니다. 이 말들에서 저는 저희 출판사의 정체성을 봅니다. 그리고 저희 책을 사주는 독자들의 기대가 어디에 있는지도 어렴풋하게 느낍니다.

의례적인 말씀이 아니라 저희는 책을 팔아 책만 만들어 왔으므로 저희 출판사의 실질적인 주인은 독자 여러분이지요. 책을 팔아 부동산에 투자해 온 출판 인사이더들과는 피가 다르지요. 독재정권이든 문민정권이든 국민의 정부이건 간에 기대려 하지 않고 저희는 저희에게 주어진 길만을 가겠습니다.
안 팔리는 책, 좀 덜 나갈 책일지라도 좀더 열심히 정성들여 만들겠습니다.
아웃사이더, 언더그라운드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좀더 만끽하면서…….

2004-8-17 | 이규상 | 눈빛출판사 대표

목록보기



위로올라가기

관리자에게 메일보내기 사이트맵
도서구입방법
 
교보문고
 
알라딘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