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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모로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 끝에 지구 북반구에 빙하기가 닥친다는 내용인데 뉴욕의 일부 생존자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책에 불을 붙여 벽난로에 지피는 장면이 나오지요.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좀 씁쓸한 장면이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택한 마지막 선택이었겠지요. 인류의 종말 앞에서는 그 무엇도 소용이 없는 듯합니다.

우울한 소식이지만 최근 한국 출판계는 거의 반 토막이 나가고 있습니다. 매출이 반 이상 줄고, 신간을 만들어내도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들입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누가 책을 읽겠느냐는 볼멘소리도 들려옵니다. 한국은 이미 불황의 늪에 깊이 빠져들었고, 이제 다시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시절이 다가왔다는 절망적인 소식도 없지 않습니다. 오늘의 이 현실을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태에 직면해 있는 것이지요.

사진계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오래된 전설이 있습니다. 사진계 사람들이라면 우선 사진학도, 사진과 교수, 사진가 그리고 사진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모두 아울러서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 전설을 부인하고 싶지만 사진집 초판 천 부 발행해 이삼 년 지나도 재고가 줄지 않는 것을 보면, 국내에서 출판된 사진 책들의 수요층이 과연 누구인가를 따져 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길한 예언이 맞아 들어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겠지요.

사진계가 사진 책을 멀리하는 이유는 첫째, 책이 사진을 찍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매뉴얼이나 기술서는 당장의 필요에 의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구해 보겠지만 그 외의 책들은 읽거나 볼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겠지요. 그러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어려울 때일수록 책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요즘과 같은 불경기와 디지털 시대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있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끼 굶고 그 돈으로 책을 사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진계 한 켠에 숨어 출판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사진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사진가는, 미안하지만 이 화려한 영상시대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한낱 소비자로서 전락해 버렸습니다. 디지털 사진 분야를 컴퓨터 전문가들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내주고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형국인 것이지요. 또한 사진가들은 사진만으로 부족해 자기 사진에 글 한편 붙여 보려고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지요. [패밀리]나 [러브] 같은 이삼십 년 전의 서양의 낡은 휴머니즘 사진이 우리 사진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로 진입할 때까지 사진가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독재자 아들의 피 묻은 자본을 쫓아다니는 그들에게 사진가로서의 역사적인 책임이나 사진에 대한 사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겠지요.

독서는 출판사나 서점을 살리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한 투자입니다. 그 투자로 인하여 사진가는 결국 상상력과 심미감을 계발하고 역사를 알게 되며, 사회 흐름의 안테나가 되어 자신의 무기인 사진을 갈고 닦아 사진으로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근원이 아름답지 못하면 사진이 아름다울 수가 없으며, 바탕이 부실하면 사진은 한낱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책을 멀리하는 사진계는 그저 소비하는 집단이며, 사회와 예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뜨거운 여름입니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잠시 끄고 책의 바다로 가보지 않으시렵니까. 책을 읽어 미망에 빠진 사진을 돕지 않으시렵니까. 사진으로 이 우울한 시대에 희망을 만들어야 지요. 제발 책이 인류의 종말을 앞두고 그저 불쏘시개로 쓰이는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한국사진신문 211호 컬럼 기고)


2004-7-28 | 이규상 | 눈빛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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