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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계 한쪽에선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며 아우성이지만 다른 한쪽에선 필생의 염원이었던 사옥을 마련하고 연일 축배를 들고 있습니다. 책은 서점을 통해 팔아야 하는데 서점이 하루가 멀다하고 문을 닫거나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이니 출판사 매출인들 성할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메이저급 출판사들은 그 쾌적한 출판도시에 입주해 오늘의 사태를 강 건너 불보듯 하고 있으니 그 출판사들의 재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의심해 보지 않을 수가 없군요. 혹시 그 광활한 부동산이…. 어쨌거나 도서정가제 문제는 그 모든 사태의 원인을 출판계가 제공했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인터넷에서는 할인해 파는데 누가 정가대로 다 받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사겠습니까?
5-10퍼센트라도 책을 할인해 사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서점만 정가를 유지하라는 것은 미봉책이며, 서점 망하라는 것이지요. 물류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서점에서 할인해 팔고 인터넷에선 정가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지금의 타협형 도서정가제는 그야말로 넌센스 투성이이며, 우리 출판계가 원칙이 있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도서정가를 유지했어야 옳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도서정가제가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면에는 우리 출판계의 리더십 부재 그리고 그 끈질긴 자사이기주의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출판협회나 출판인회의가 모두 출판사 사장들의 친목단체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에 출판정책을 수립하거나 감독할 압력단체나 이익단체로서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온라인 서점이 출현해 할인판매 경쟁에 돌입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출판사들이 공급율 인하를 통해 그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요. 자존심 접고 고백하건대 도서공급율 하향조정은 메이저급 출판사들에게는 ‘양보'의 문제겠지만 마이너급 출판사들한테는 그야말로 ‘생존'이 걸린 문제랍니다.

작금의 출판 침체 상황을 저는 출판계가 그동안 던진 그 무수한 부메랑이 되돌아 오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도서정가제를 폐하는 것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 봅니다. 이제와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계로 바꿔 버리자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도 자사의 이익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선택의 여지와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지경까지 끌고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2004-5-12 | 이규상 | 눈빛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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