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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과 최근의 대만 사태를 보면서 저는 역사는 변증법으로 발전한다는 해묵은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아무래도 반(反)하여 다시 합(合)해지는 운명을 타고 났는가 봅니다. 오늘의 진보세력도 나중에는 결국 보수세력이 되고 말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반(反)하는 힘을 늦춰서는
안 되겠지요. 세상을 둘러보면 알 수 있듯이 고인 물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니까요. 그 오수를
퍼내는 동력은 반(反)에서 나오지요.

불법 유턴을 하거나 쓰레기를 남의 집앞에 슬쩍 가져다놓거나 하는 일에서부터 역사의 진보에 저항
하거나 예술을 일신의 양명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는 각양각색이고 제멋대로이지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제멋대로인 것을 다양하다며 포용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마음속에서는 사람들을 부단히 평가하고 재단하며 편을 가르고 있지요.

우리 사진계를 예로 들어보면, 파인아트 사진과 광고사진 그리고 패션사진, 보도사진 등 사진 각 분야가 공존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비하하고 옛날 사진들을 자료사진쯤으로 폄하해 버리는 이들이 많지요. 이대로 가다간 이경모, 임응식 선생의 사진이 머지않아 참고도판쯤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지요. 거꾸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광고사진이나 패션사진을 우습게 여기는 이도 없지 않지요. 대개 몰역사성과 상업성이 비판의 도마에 오르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사진사의 그 유명한 광고·패션사진가들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요.

폄하하거나 비아냥거리는 행위 등은 올바른 비판의 태도가 아니며, 사진에 종사하는 동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비판의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비양심적이거나 비도덕적이며 사진과 역사의 진보를 훼방놓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진과 동료를 매도하거나 하는 행위에 대한 것이겠지요. 어느 예술분야나 마찬가지이지만 독재권력과 재벌에 협조하거나 아부해 온 사진가, 십년 전 강의노트를 애지중지하며 학생들을 사병이나 접대부 부리듯이 하는 사진과 교수, 글쓰기의 기본은커녕 인화지의 앞뒤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사진가 위에 군림하려는 사진비평가,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혈안인 사진산업계, 고교 사진반 회지만도 못하면서 아마추어 일요사진가만 양산해 내는 사진잡지와 출판 등은 모두 비난받아 마땅하지요. 우리는 아무도 그러한 것들을 다양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까지 포용하기에는 현실은 너무 급박합니다.

형식이 반드시 내용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내용 없는 형식은 한낱 겉치장에 불과합니다. 실례지만
한국의 현실은 미국이나 유럽의 현실과는 다릅니다. 또 한국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세계를 전전하며
사진전을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적인 사진가가 되는 것도 아니랍니다. 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도 있지요. 저 텅 빈 사진전시장을 단순히 대중들의 몰이해로 몰아붙이기에는 호소력이
없습니다. 사진책 천 부도 안 팔리는 현실을 언제까지 출판사와 독자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요. 누군가가 예술은 영혼을 번역하는 작업이라 했지요. 사진도 예술이라면 혹시 오늘의 이 천박한 한국사진이
한국사진가들의 영혼의 반영일까 두렵습니다.

새싹들이 대지를 박차고 솟아나옵니다. 가만히 허리를 숙여 그들을 들여다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모든것에 저항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누리는 자가 특히 아름다워 보이는 봄입니다. 사진과 인간 영혼의 부단한 진화를 기대해 봅니다.


2004-3-31 | 이규상 | 눈빛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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